나이 들수록 '재미있게 읽는 기술'이 필요하다
치매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한 '오락' 독서법
양선희(소설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나는 노인이다. 고로 독서하지 않는다?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요즘 모이면 유독 '치매'에 관한 화제가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아마도 나이 들어가는 공동체에서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치매'는 그만큼 공포스럽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 주제다. '치매 예방'에 효험이 있다는 각종 비법이 떠돌아다니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영어 단어 외우기, 숫자 퍼즐 맞추기, 뇌 건강에 좋은 영양식…
그런데 뇌 건강과 관련해 가장 고전적 방법인 '독서'는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로도 드러난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독서율이 겨우 15.7%다. 20대(74.5%)와 비교하면 거의 바닥 수준이다. 그 이유는 대단히 현실적이다.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책이 재미없어서' '읽어봐야 남는 게 없어서'
한데 책을 꾸준히 읽는 고령층의 경우는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것이 '책이야말로 건강한 노년의 비결'이어서란다. 어쩌면 독서를 끊은 고령층도 직관적으로는 ‘책에 건강한 노년 비결이 있다’ 는 것쯤은 알아차리고 있을 것이다. 한데 글씨도 안 보이고, 재미도 없고, 기억나지도 않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쌓여 독서를 어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년기엔 독서를 기피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면 된다.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지는 활동이 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뇌, 심심하면 늙는다
뇌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곧 뇌, 뇌가 곧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뇌의 작동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고, 또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그 뇌 작동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뇌과학자 류인균 이화여대 교수는 "뇌가 늙으면 사람도 늙는다"고 단언한다. 나이가 들면 뇌의 크기가 줄어들고, 전두엽이 쪼그라들고, 신경세포도 감소한다. 마치 오래된 스펀지가 단단해지고 쪼그라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좋은 소식도 있다. 뇌는 나이가 들수록 전체적 사이즈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요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뇌를 건강하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뇌를 젊게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류인균 교수는 뇌 건강을 유지하려면, 딱 4가지만 기억하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다.
- 걷기
- 어울리기
- 즐거운 대화
- 지적인 자극
'생각하는 뇌는 젊어진다'. 일본의 뇌신경학자 오시마 기요시 박사가 《죽어가는 뇌를 자극하라》는 제목의 책에서 밝힌 일관된 주제는 이것이다. 늘 생각하라는 얘기다. 그가 소개하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뇌는 오직 '쾌락'을 추구하므로, 무조건 즐거우면 뇌는 젊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장년층의 독서는 '공부' 아닌 '놀이'여야
이제 뇌 건강에 필요한 요소들을 다 모아보았다. 걷기, 어울리기, 즐거움, 생각, 지적인 자극. 대략 이렇게 요약이 된다. 내가 이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역할 낭독극'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역할 낭독극 모임'을 3년째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다만 함께 모여서 읽는 그 활동에 주력한다.
이 모임에선 책의 내용을 학습하지 않는다. 젊을 땐 책을 '배우기 위해' 읽었지만, 이제는 '즐기기 위해' 읽을 때여서다. 노년기의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 놀이, 경쟁이 아니라 휴식, 성취가 아니라 즐거움이어야 한다. 독서의 효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그걸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읽어도 남는 게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 굳이 그 내용을 머릿속에 남겨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 하는 순간이 바로 뇌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 잊어버리고 다른 책을 잡으면 된다.
사실 각기 살아온 인생이 다른 노년기의 사람들이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 나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나이든 뇌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지적인 자극을 받고, 즐겁게 대화하고 어울리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가 된 서구에선 낭독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한번 실행해본 것이다.
노년기의 독서는 시력도 안 따라주고, 공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참아내는 인내력도 딸려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혼자서 조용히 읽는 게 아니라 함께 모여서 소리 내어 읽으면 그게 '오락'이 된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노년기 혼자 방에서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같이 읽을 사람이 없다면, 카페나 도서관이라도 가서 읽으라는 것이다. 그건 바로 고령층일수록 사회적 관계맺음이 중요해서다.
낭독은 노년기 건강에도 좋다
'낭독'은 생각보다 노년층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첫째, 신체 운동이다. 혀와 성대를 움직이고, 호흡을 조절하며, 얼굴 근육을 사용한다. 큰 소리로 읽으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되어 폐활량도 늘어난다. 사람은 언제나 혀를 움직여야 한다.
둘째, 사회적 활동이다. 함께 모여 같은 텍스트를 읽으며 웃고 때로는 눈물짓는다. 중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공감'이다. '이 대목에서 왜 주인공이 이렇게 했을까?' 같은 무거운 질문이 아니라, '이 장면 진짜 웃기지 않아?' 하며 편하게 수다를 떤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셋째, 뇌 자극이다. 눈으로 글자를 인식하고, 소리 내어 읽으며, 타인의 낭독을 들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게다가 재미있으니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고 행복 호르몬은 늘어난다.
넷째, 마음 치유다. 한 독서 치유가는 "큰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크게 숨을 쉬는 것과 같고, 텍스트 내용에서 얻는 정신적 위안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낭독은 어떻게 시작하나
일단 서너 명부터 열 명까지 책 읽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은 낭독 대본을 준비한다. 요즘은 역할별로 나누어 낭독용으로 나온 낭독 대본들이 나오고 있다. 처음엔 이런 책들을 골라서 함께 읽으면 된다. 배우처럼 연기할 필요는 없다. 그냥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읽으면 된다. 틀려도 괜찮고, 더듬어도 괜찮다. 오히려 실수가 웃음을 만들어 분위기를 더 좋게 한다.
그다음 단계는 자신들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낭독 대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건 책을 쓰는 과정이기도 해서 훨씬 창의적이고, 뇌에는 더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책 쓰기는 창작이 아니라 각색이라는 점에서 훨씬 쉽다. 이미 이야기가 있으니 대화 부분을 역할별로 나누고, 나레이터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면 된다. 아래 표본처럼 표 형식으로 만들고 글자 폰트를 13~14로 크게 하면 읽기에도 좋다.
노화하는 뇌와의 게임을 즐겨라
오시마 기요시 박사는 뇌가 건강하게 작동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머리 좋은 사람은 IQ가 높은 사람도, 학벌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이런 사람이란다.
"심신이 건전하고, 생각이 유연하며, 시야가 넓은 사람. 의욕이 있고,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사람. 호기심이 강하고, 감동을 잘하며,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 생명을 존중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건강한 사람."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어른'이 바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어른이란 결국 '노화하는 뇌와의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데 주목하기 바란다. 게임은 즐거워야 한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책을 소리 내어 읽고, 함께 어울리는 이 단순한 활동들이 뇌를 자극하고, 마음을 치유하며, 건강한 노년을 만든다. 무엇보다 즐겁다. 즐거우니 계속하게 되고, 계속하니 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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