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삶을 위한 죽음 공부
좋은어른 아카데미
김현아(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신 분들은 이집트 인들은 어쩌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살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죽음과 삶은 하나이고 어쩌면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현세의 즐거움에 몰입을 했고 점점 죽음을 잊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아무리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길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문명과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류는 다시 죽음을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을 극복하고 치료해야 하는 질병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생겼습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종교는 현대 의학입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죽음을 몰아내는 대신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하면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할지 근시안적인 방법만을 제시합니다. 그 결과가 소위 ‘당하는 죽음’이라고까지 묘사되는 죽음의 의료화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4기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지 않는 경우 여명이 6개월 밖에 안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의사는 항암 치료를 하면 몇 개월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단지 몇 개월의 삶을 더 살기 위해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마칠때까지만은 살고 싶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선택에 따라 생존 기간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경과는 크게 다릅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은 가장 짧게 생존하지만 대부분의 기간 의식을 가지고 가족과 남은 삶을 보냅니다. 치료를 받는 경우 생존 기간은 조금 더 길어지지만 반드시 삶의 질이 치료를 하지 않은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오래 사는 경우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오래 살겠다’고 여러가지 약물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반복하고 그 합병증으로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다가 사망하는 경우인데 실제로 그런 요구를 하는 환자는 없지만 본인이 의사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는 경우 대부분 이런 경과를 거쳐 사망하게 됩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기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의식도 좋지 않은 채 가족과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의료의 개입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암처럼 죽음과 강하게 연관되는 질환을 갖지 않는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한동안 연명 치료에 대한 논의가 암 환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반작용인지 암에 걸리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오해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여러 해 동안 자리보전을 하다가 사망한 노인에게 중환자실 치료를 안 했다고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것이 현 세태입니다. 하지만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자신의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어르신들을 자주 봅니다. 이런 경우 자식들은 여기까지만 치료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최선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에 오늘도 연명 의료 의향서는 막상 죽음의 문턱에서는 휴지조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갈등때문에 남은 가족들은 반목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장 불의의 사고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불가사의에서 확실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죽게 될 지는 삶의 막바지가 되어도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고대 이집트 인들처럼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 의료의 개입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남은 가족과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물론 의료의 개입은 닥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치매가 되었을 때, 암에 걸렸을 때, 사고로 의식 불명인 채 인공 호흡기에 의존해야 할 때, 노환으로 침상 밖을 나오지 못할 때 정도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이 정말 무섭고 싫지만 죽음을 외면하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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